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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07 16:37
[17호] 2017년 기획연재 Art&Artist④_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 백남준
 글쓴이 : KARTS
조회 : 108  

출처 : 구글이미지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 (1962)

백남준이 서른 살에 플럭서스 창시자인 친구 ‘마치우나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
‘황색 재앙’, 이것은 13세기 초 유럽인이 몽골로부터 침공을 당하면서 받은 공포감을 뜻한다.
‘바로 나다’ 이건 “국가는 바로 나다”라는 루이 14세의 말에서 온 것으로 영어·프랑스어를 합성해 “짐은 황화[黃禍]다(Yellow peril c’est moi)”라고 패러디한 것이다. 
백남준은 실제 30년 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이 말을 실현했다.

백남준 집안은 당대 최초의 재벌이었다. 동대문(현, 종로구) 창신동 저택이 3천 평이나 되었고 한국에 캐딜락이 두 대 밖에 없을 때 집에 1대가 있었고 차 수리공만 10명이나 되었다. 부친 백낙승 씨는 1920년대부터 천대 이상의 방직기를 갖춘 ‘태창방직’의 최고경영자로 일본 메이지와 니혼대학 상대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의 부친의 여권번호가 6번이고, 백남준이 7번이었으니 당시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급 다음 순위이지 않은가 싶다. 그의 조부 백윤수 씨 역시 당시 포목점 중 과반 이상을 독점하는 거상이었고 조선말기 왕실에 비단과 장례옷감 등을 댔다고 한다. 재산은 한성은행 자본금의 세 배에 달했다고 하니 그의 유년시절이 얼마나 유복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백남준은 당시 상류층만 다니던 수송국민학교와 경기공립중학교를 다녔는데, 경기중학교 음악교사로, 후에 이대 음대학장을 지냈던 신재덕에게 피아노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배웠다. 1949년에는 부친 백낙승 씨의 통역으로 따라갔다가 홍콩의 로이덴 스쿨로 전학한다. 백남준은 이때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여권과 일본 비자가 있었던 백남준은 도쿄로 건너가 도쿄대학 미학/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을 당시 현대음악의 메카 독일 뮌헨대학으로 진학하여 철학 석사와 음악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런데 독일에 있을 때쯤 존 케이지나 조지 마치우나스 등의 영향을 받아 행위예술을 접한 뒤, 행위예술가로 변신하게 된다. 머리카락에 먹을 묻혀 선을 그리는 것도 사실 백남준이 했던 퍼포먼스다. 이후 플럭서스의 일원이 되고 미국 뉴욕과 독일을 오가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출처 : 구글이미지

백남준은 1964년 미국 뉴욕에 도착해 행위예술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무대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기도 했는데, 1967년에 백남준이 누드인 첼리스트 샬롯 무어먼과 공연하다가 샬롯이 경찰에 체포당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은 유명하다. 그 결과 백남준은 미국 예술계에서 제대로 된 예술도 못하고 기행을 일삼는 사람, B급 예술가 정도로 치부되었다.

B급 예술가로 치부 당하는 와중에도 백남준의 인지도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었고, 기괴한 퍼포먼스를 하며 조금씩 시도했었던 비디오아트는 점점 백남준의 예술 세계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백남준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만 알고 있는데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1974년부터 비디오아트 설치 작업을 선보였으며, 영상이 공중파 TV에 방영되는 등 점점 유명해지고 예전과 다르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전시되었고, 뉴욕뿐만이 아닌 미국 예술계에 큰 인지도를 얻게 된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영상 이미지들

1984년 새해 벽두에 전 세계 동시 송출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프로그램인 데다 더불어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의 다원생중계였다. 훗날 이 작업은 인공위성 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불리게 된다. 현대음악가의 전설로 남은 존 케이지가 나오는가 하면,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배우 이브 몽탕이 신나게 탭댄스 추며 노래도 부른다! 후반부에 진지하게 첼로를 켜는 장면은 압권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오웰, 당신이 예측한 미래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잘 살아 있다”로 전개된다.

실제로 소설 1984에는 발달한 과학이 텔레스크린같은 것처럼 오히려 인류를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데, 백남준은 발달한 과학을 이용해 예술의 새 지평을 연 셈이었다. 예술의 신기원을 열면서 동시의 영미문화의 대작가를 까고, 아울러 현대 과학의 발전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갖췄다. 게다가 오직 1984년에만 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점도 돋보인다.


바이 바이 키플링‘의영상 이미지들

1986년에는 바이 바이 키플링이라는 작품으로, 러디어드 키플링의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동양과 서양은 절대로 서로 어울릴 수 없다(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는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주제로 도쿄, 뉴욕, 서울의 ‘서구’와 ‘비(非)서구’의 모습을 순서 없이 뒤죽박죽 방영하면서 동양과 서양 모두 동일한 시간 축에 살고 있음을 역설하고 오리엔탈리즘을 철저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백남준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첨단기술 매체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상상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당시 예술가들이 텔레비전 같은 새로운 매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를 배척하거나 파괴하는 작업을 선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행보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그 시대에 ‘전자 고속도로’를 예견한다든지, ‘인포아트’에 대해 논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지금 읽어보면 당연하고 뻔하다 싶은 내용이지만, 인터넷이 나오기도 전에 그런 예견을 한 사람은 당시 몇몇 매체이론가들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사실상 비디오아트 뿐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논할 때도 백남준을 빼놓고 말하는 것은 힘들 정도다. 오히려 한국보다 해외 예술계에서 뛰어난 네임 밸류를 보이며, 국내외 근현대 미술사에서 빠지려야 빠질 수 없는 플럭서스의 주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퍼포먼스 예술이건, 비디오아트 개척 이후 이건, 공인된 위대한 예술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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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극작과 김 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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