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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26 14:54
[24호] Art-Collector②: 나라의 자존심이 된 간송 전형필의 컬렉션
 글쓴이 : KARTS
조회 : 52  

<청년 전형필. 출처: 구글 이미지>

1930, 상복 입은 청년이 드넓은 논 앞에 섰다. 황해도·경기도·충청도에 이르는 논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이 거대한 논으로부터 한 해 만 석 넘는 쌀이 걷혔다. 당시 쌀 만 석은 백만 원으로 재산이 그 정도 되면 백만장자라 불렸다. 이때 기록에 의하면 백만장자 조선인은 마흔세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청년이 스물네 살 나이로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아 조선인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백만장자는 가히 자유로운 직함이 아니었다. 조선총독부에서 호시탐탐 재산을 노리고 있었다. 이 많은 재산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한숨부터 터지는 이유였다. 만일 당신이 무거운 책임을 진 식민지 청년이라면 무엇을 했겠는가. 청년은 기발한 선택을 했다. 자신의 재산을 나라의 보물과 맞바꾼 것이다. 일본으로 유출되던 문화재들을 원래 주인 땅에 돌려놓기 위해 그는 대수장가의 삶을 선택했다. 덕분에 훈민정음(訓民正音)해례본, 다수의 고려청자, 겸재(謙齋), 단원(檀園), 추사(秋史) 거장들의 조선 화첩 등 수천 점의 보물들이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 이 청년 이름이 바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이다.

전형필은 지금의 서울 종로에서 대를 이어 미곡상을 경영하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죽고 전형필이 집안을 이을 유일한 자손이었다. 그에게로 집안의 관심이 몰린 것은 당연했다. 전형필은 신식 교육을 받았다. 이 시절 일제에 의한 교육 통제가 있었음에도 집안사람들은 신식 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아야 변화하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형필은 보통학교를 거쳐 휘문고보를 다녔다. 휘문고보에서 전형필은 미술교사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을 만났다. 고희동은 한국인 최초 서양화 전공 화가였다. 전형필에게 서예와 그림을 가르치던 그는 전형필이 고서점을 다니며 책을 모으는 취미를 눈여겨보다 문화재수집을 권유했다. 결정적으로 고희동은 전형필에게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을 소개하면서 전형필이 본격적으로 민족 문화재 수장가로 성장하도록 하는 첫 번째 길잡이가 되었다.

전형필이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에 재학하던 시절 고희동은 오세창과 만남을 주선했다. 오세창은 3·1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다. 오세창과 첫 만남에서 전형필은 오세창 선친의 행방불명된 탁본을 구해 건넸다. 오세창은 단박에 전형필의 그릇을 알아봤고 간송(澗松)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간송은 산골물 간소나무 송을 합쳐 선비의 청렴함과 변치 않는 의리를 강조한 의미였다. 이렇게 오세창은 간송의 평생 스승이 되었다. 오세창은 간송에게 문화재 감식안을 길러주었고, 훌륭한 인재들을 연결시켜주었으며, 고비마다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훗날 간송이 사설 박물관을 세우게 된 배경에도 오세창의 당부가 작용했다. “3·1 만세운동 때 감옥에 다녀오니 남은 재산이 별로 없더군. 생활이 힘들 때마다 선친이 남겨주신 서화를 몇 점 처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 그러니 자네도 힘들게 수장한 물건을 절대 다시 내놓지 않아도 될 만큼만 모으게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네가 오랫동안 애써서 모은 수장품이 자네 스스로 또는 자손들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니 내 말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게" 오세창으로 인해 간송은 문화재 수집에 이어 보존 방법까지 고민하게 됐고 우리나라 최초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간송은 젊은 시절을 내내 박물관을 기획하고 문화재를 모으면서 보냈다. 서화와 고서로 시작해 도자기, 불교 조각품 등으로 다양하게 수집품 종류가 넓어졌다. 간송은 민족 문화재 보존이라는 임무를 상기하며 체계적인 수집을 했다. 사적 취향이나 독점욕이 아닌 역사적인 가치를 높게 쳤다. 간송의 안목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고 나중에는 그가 잡는 물건마다 예외 없이 민족미의 정수들이었다. 간송의 수집 관련 일화는 수도 없이 많으나 그중 유명한 두 가지는 고려청자와 훈민정음수집 사례이다. 일본에서 거주하던 존 개스비(John Gadsby)라는 영국인 수장가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한창 일본의 정세가 불안하던 1930년대였다. 간송은 일찍이 개스비의 명품 청자 수장품들에 대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간송은 개스비가 영국으로 돌아가며 수장품을 처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스비는 예상대로 고려청자 22점을 일괄 처분하길 원했다. 간송은 곧장 개스비와 접촉했다. 하지만 개스비는 일본의 수장가들, 대영박물관 사이에서 어디로 물건을 넘길지 고민하고 있었다. 간송은 자신의 문화재 수집 철학을 얘기하며 개스비를 설득했다. 이에 개스비는 간송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치열한 가격 흥정 끝에 개스비의 몫 2점을 제외하고 남은 20점의 청자를 간송에게 넘겼다. 가격은 40만 원, 당시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이들 명품 청자 중 7점이 광복 후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다.

한편, 훈민정음해례본을 얻는 일은 보다 조용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1940년대 일제의 수탈은 점점 혹독해졌다. 견디다 못한 지방 양반댁에서는 전해오던 옛 책들을 기어코 팔 수 밖에 없었다. 시중에 책이 쏟아져 나왔고, 간송은 가슴 아파하면서 책들을 거둬들였다. 그러던 중 훈민정음이 기적처럼 간송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최태준이라는 교수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간송에게 책을 넘긴다던 최태준이 지하구국운동을 펼치다 검거되어 2년의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김태준은 석방된 후 다행스럽게 다시 간송을 찾아왔다. 몇몇 일본인 학자들이 훈민정음에 관심을 두었으나 김태준은 당연하게도 그들 손을 마다했다. 간송은 보물의 격에 맞는 비용을 지불하겠다며 최태준이 부른 가격에 열 배를 쳐서 계산했다. 그렇게 훈민정음은 간송의 수장고에 들어갔다. 간송은 일제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보관했고 해방 후에야 세상에 내보였다. 오늘날까지도 공개된 훈민정음원본은 간송본이 유일하다. 1)


<훈민정음간송본. 출처: 구글 이미지>

이처럼 간송은 오직 나라의 보물을 위해 살아왔다. 민족의 혼이 얼어붙은 일제강점기, 간송은 문화를 통해 정신을 지켰다.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 찾게 되었을지 모를 문화재들은 간송의 품으로 차곡차곡 들어왔다. 그리고 오늘날 이토록 소중한 수장품들이 보화각에서 이름을 바꾼 간송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간송의 수장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이자 나라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간송 전형필. 출처: 구글 이미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웹진 기자단

미술원 미술이론과 서혜원

 

<참고자료>

이충렬, 간송 전형필, 김영사, 2010.

김슬옹,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역사와 평가, 한말연구 제37, 한말연구학회, 2015.



1) 2008년도 경상북도 상주에서 또 다른 원본이 발견되었지만 현재 소장자가 공개하고 있지 않아 원본 여부를 공개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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