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약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창조적 날개를 달고 정상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오릅니다.
발전재단소식  Korea National of Arts Foundation
공지사항
기부스토리
웹진
약정하기 약정서다운 입급계좌안내 참여방법 안내
 
작성일 : 19-04-29 17:37
[26호] Art-Collector④: 휘트니 미국 미술관 설립자,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
 글쓴이 : KARTS
조회 : 100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 출처: whitney.org>



“나는 미국 미술가들의 창조적 재능을 믿는다”
휘트니 미국 미술관 설립자,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


뉴욕 4대 미술관1) 중 하나인 휘트니 미국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이하 휘트니 미술관)은 1930년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 1875-1942)에 의해 설립됐다. 20세기 초, 미국의 젊은 작가 대부분은 작품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수 없었다. 카네기(Andrew Carnegie)나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같은 자본가들이 미술에 막대한 후원을 했지만 비주류나 신진 작가들을 위한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당시 자본가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자신들의 귄위를 확인하길 즐겼다. 한편, 조각가로 활동하던 휘트니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가까운 곳에서 인식할 수 있었다. 이로써 휘트니는 1907년 미국 최초 여성 전용 사교 클럽인 콜로니 클럽(Colony Club)에서 전시를 기획하여 동시대 무명작가들의 지원을 시작했다.

휘트니는 1875년 1월 9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문은 페라리 회사 운영, 증기선 및철도 사업 등을 펼치던 미국 산업혁명의 대표자격 집안이었다. 게다가 휘트니의 아버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집행위원회 의장을 맡을 만큼 문화계 전방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휘트니는 유명한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꾸며진 저택에서 호화로운 미술 소장품을 보며 자랐다. 이와 같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휘트니가 미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휘트니는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에 진학하면서 조각을 배웠다. 휘트니는 공공 기념물 조각에 관심이 있었다. 1901년에 뉴욕 스테이츠 빌딩 야외에 남성 누드 조각을 만들어 선보인 것이 작가로서 첫 계약 작품이었다. 이때 휘트니는 본명을 숨긴 채 활동했다. 사회적인 지위로 인해 자신의 작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1910년이 되어서야 휘트니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했다. 무명의 작가에서 조금씩 입지가 쌓이던 무렵이었다. 같은 해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에 당선되어 <이교도의 신(Paganisme Immortel)>을 전시했고, 이듬해 파리 살롱(Paris Salon)에서 <스페인 농부(Spanish Peasant)>를, 파나마 대서양 박람회(Panama-Pacific Exposition)에서는 <엘도라도의 아즈텍 분수(Aztec Fountain of Eldorado)>를 전시했다. 1917년에는 스페인 정부 계약을 맺어 스페인 팔로스에 위치한 항구에 약 34미터 크기의 콜럼버스 조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녀는 전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여성 조각가로 묘사되기 시작됐다.




<스튜디오에서 휘트니.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일부는 휘트니를 부유한 아마추어 미술가로 평가절하했다. 한 언론에서는 “불쌍하고 작은 부유한 소녀: 해리 휘트니 부인, 다락방에서 굶주림 없이 미술가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하다.”라는 신랄한 기사를 내기도 했다. 휘트니는 때때로 자신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자조했다. 그녀가 계약을 맺고 돈을 받으면 가난한 예술가들의 자리를 빼앗은 셈이었고, 반대로 돈을 받지 않으면 예술가들의 시장을 깎아내린다고 비난받았다. 휘트니가 부유한 데다 여성이었던 탓에 예술가 지위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휘트니의 작품을 애정하고 구매하는 수집가는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2) 휘트니는 이때의 경험에 비추어 작품 구매가 무명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동력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휘트니는 아카데미즘이 지배하던 제도권 미술에 비판적이었다. 휘트니가 지지한 것은 단일하고 정제된 화풍이 아니라 다양하고 전위적인 미술이었다. 그래서 휘트니는 비주류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사들이는 등 후원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1918년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Whitney Studio Club)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에서는 작가 활동 사항만 확인되면 모두 가입이 허가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작가들에게는 집세와 의료비를 지원했고, 작가들이 모여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공간과 행사를 구성하고 미술 교육을 실시했다. ‘젊은 미술가들의 친구들(Friends of Young Artists)’이라는 공모전을 개최해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했는데 여타 미술관처럼 심사와 수상을 거치지는 않았다. 휘트니는 경쟁적인 제도가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수많은 작가가 클럽의 전시회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클럽 회원은 400여 명까지 불어났고 1928년까지 총 86번의 전시를 개최해 미국 미술가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전시의 기회를 제공했다. 클럽 작가 중에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퍼는 휘트니 클럽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에서 호퍼의 작품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는데 대신 휘트니가 그의 작품을 구매했다. 호퍼가 오랜 무명시절을 보내는 동안 휘트니는 꾸준한 후원을 했다. 이러한 인연은 훗날 호퍼가 사후 그의 작품 2,000여 점을 휘트니 미술관으로 기증하도록 했다. 현재 휘트니 미술관은 3,156점의 호퍼 작품을 소장 중이다.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휘트니 미술관 소장. 출처: whitney.org>

1928년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은 기관이 비대해지면서 문을 닫았다. 휘트니는 소장하였던 6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아버지가 위원회로 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고자 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의 관장은 이를 거절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명성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수집 했왔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휘트니는 클럽을 함께 운영했던 줄리아나 포스(Juliana Force)와 함께 당대 미국 미술에 헌정하는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휘트니는 미술관을 통해 “(미국 미술에 대한) 무관심의 벽을 부서뜨리길” 원했다. 철저히 미국의 생존 미술가 위주로 편성된 미술관은 주류에서 배제 당해온 비주류 미술 작품들은 미국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평가될 수 있도록 하였다. 휘트니 미술관은 스튜디오 클럽 때 정책을 이어받아 심사 없이 직접 작품을 구매하고, 작가가 직접 전시 출품작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큐레이터 세 명은 모두 작가들로 구성됐다. 작품을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작품이 구매 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라벨을 붙여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시 카탈로그에는 “모든 작품은 구매가 가능합니다.”라고 기재되기도 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판매할 때는 기관과 작가가 수익을 나누어 갖는 커미션을 적용하지 않았다. 더불어 미국 미술의 전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비엔날레를 개최해 비교적 균등한 비율로 다양한 미국 미술을 포용하도록 노력했다.3)




<휘트니 미술관 전경. 출처: 구글 이미지>

휘트니에게 후원받던 미국 사실주의 화가 슬로안(John Sloan)은 당시 후원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 누구도 휘트니 여사가 포스 여사를 통해 베푼 친절과 도움의 정도를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들은 없어졌다. 아마도 휘트니 여사의 부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작가들의 작업실 월세가 지불되고,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돈이 필요할 때, 유럽 여행비용이 필요할 때, 자신의 작품을 팔게 된 경위를 알고 있다. 포스 여사의 사무실은 항상 그러한 부탁과 간청에 열려져 있었다. 그녀가 비서였을 때 그리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두 명의 비서를 거쳐야 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4)

그러나 이 같은 후원은 1942년 휘트니가 67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6년 후 관장이던 포스까지 사망하면서 재정적인 곤란을 겪었다. 그러자 미술 작품 수집가들은 자본가를 포함한 19명의 ‘휘트니 미술관 후원자들(Friends of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을 구성해 위기를 극복하도록 했다. 또한, 2008년 미술관이 다시금 자금난을 겪자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회장인 레너드 로더(Leonard A. Laude) 약 1억 3,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처럼 휘트니 미술관은 비주류 미술관으로 시작해 자국민들의 풍부한 지원을 받는 미국 문화 중추로 성장했다. 오늘날 휘트니 미술관은 20세기와 21세기 미국에서 활동한 3,400명이 넘는 예술가의 23,0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비엔날레는 꾸준히 명성을 얻고 있으며 동시대 미술에 발 빠르게 반응해 뉴미디어 미술 분야의 지평을 넓혔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웹진 기자단

미술원 미술이론과 서혜원

 

<참고>

'미국적인 것'의 전시 무대로서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문한알,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6.

20세기 초 미국의 여성 후원자들과 현대미술관의 설립 : 뉴욕현대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윤영,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5.

뉴욕 주요 미술관 후원 문화에 관한 연구 : 기증기부유증을 중심으로, 한혜선, 경희대학교 대학원, 2010.

휘트니 미국 미술관 홈페이지, whitney.org


-------------------------------------------------------------------------------------------------------------

1) 일반적으로 뉴욕의 ‘4대 미술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 미술관, 휘트니 미국 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을 일컫는다.

2) '미국적인 것'의 전시 무대로서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문한알,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6.

3) 위의 논문.

4) 20세기 초 미국의 여성 후원자들과 현대미술관의 설립 : 뉴욕현대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윤영,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5.


 
 

[27호] 동문 지…
[27호] 동문 지원 사업 2: <안녕을 말하는 법> 박성…
[27호] 동문 지…
[27호] 동문 지원 사업 1: Altimeets 무용단 창단공연 <1…
[27호] 재단 소…
[27호] 재단 소식 4: 신영체임버홀 1주년 기념 공연 <…
[27호] 재단 소…
[27호] 재단 소식 3: 신영컬처클래스 시즌 9 행사 및 공…
[27호] 재단 소…
[27호] 재단 소식 2: 이선화장학금 장학증서 수여식 및…
[27호] 재단 소…
[27호] 재단 소식 1: 2019 발전재단 지정기부장학금 장…
[27호] Art-Collecto…
[27호] Art-Collector⑤ 모험을 주도해 모마(MOMA)를 만든 …
[27호] 기획연재…
[27호] 기획연재칼럼⑦: 슬픈 날은 바로크선율을…
[27호] 제16회 K&#…
[27호] 제16회 K'ARTS Date 후기_그들 뒤에 감춰진 She
[26호] 재단 공…
[26호] 재단 공모사업: 제4회 신영컬처드림업
[26호] 재단 소…
[26호] 재단 소식: 학교 신문사 지속 지원
[26호] 재단 소…
[26호] 재단 소식: 신영컬처클래스 시즌 9 공연
[26호] 재단 소…
[26호] 재단 소식: 소롭티미스트 한양클럽 장학후원 …
[26호] 재단 소…
[26호] 재단 소식: 김정숙 여사와 벨기에 마틸드 왕비 …
[26호] 기획연재…
[26호] 기획연재칼럼⑥: 박은희 발전재단 상임이사
[26호] 이강숙 …
[26호] 이강숙 문희자 부부 기증 작품전 후기
 1  2  3  4  5  6  7  8  9  10    
(재)한국예술종합학교발전재단 주소:우)02789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37 본부동 4층 M403호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전화 : 02-746-9014~7 팩스:02-964-9019 이메일:fund@karts.ac.kr
Copyright(c)2012 Korea National of Arts Foundation All Right Reserved. Staff Login
개인정보처리방침  I  이용약관 I  오시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