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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25 11:23
[27호] Art-Collector⑤ 모험을 주도해 모마(MOMA)를 만든 여성 트리오 : 애비 록펠러, 릴리 블리스, 메리 퀸 설리반
 글쓴이 : KARTS
조회 : 60  

<'뉴욕 현대미술관전경. 출처: MOMA>

뉴욕 맨해튼 53번가에는 전 세계 현대 미술의 거점으로 꼽히는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이하 모마)’이 있다. 이곳에는 건축, 디자인, 회화와 조각을 포함한 거장들의 작품 20만여 점이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이곳을 모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오늘날 이렇게 사랑받는 모마는 처음 단 84점의 작품만을 소장한 작은 미술관에서 출발했다. 1929년 개관 당시 추상화나 전위 예술은 미국에서 예술로 이해받기 어려웠다. 미국에 유럽의 현대 미술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13<아모리 쇼(Armory Show)> 전시를 통해서였다. 이때 전시는 미치광이 쇼에 비유되며 미국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술학도, 교사, 미술관 직원들이 모여 <아모리 쇼> 참여 작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그림 복사판을 불태우고 전시 기획자인 월터 파크(Walter Pach)의 장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들은 큐비즘은 광기와 허풍 사이를 오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1) 미국은 세계 현대 미술의 본고장이라 불리지만, 100여 년 전에는 현대 미술에 격렬히 저항하던 불모지였다.


<모마 설립자들: (왼쪽부터) 애비 록펠러, 릴리 블리스, 메리 퀸 설리반. 출처: Medium>

이 불모지를 개척해나간 이들은 세 여성이었다. 당시 주요 컬렉터들은 걸작이라 불리는 고가의 미술 작품을 수집하여 부와 명예를 과시했다.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현대 미술은 적절한 수집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애비 록펠러(Abby Rockefeller), 릴리 블리스(Lillie Bliss), 메리 퀸 설리반(Marry Quinn Sullivan)은 현대 미술품을 사들였다. 지금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웠던 와중에 후원자로 활동한 이들은 부유층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부유하더라도 이들의 미술 수집 활동에는 제약 따랐다. 일례로 애비 록펠러는 상원의원이자 컬렉터인 올드리치 가문에서 태어나, 막대한 재력을 지닌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의 부인이었음에도 여타 남성 컬렉터에 비해 경제적인 수집 활동을 했다. 애비의 남편 존 록펠러는 고미술품을 수집했는데 아내의 전위적인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비는 남편의 취향과 타협해 다소 일관적이지 않은 수집 방향을 보였다. 릴리 블리스는 자신의 현대 미술 컬렉션을 같이 살던 어머니의 눈을 피해 창고에 보관했다. 1921년 블리스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들을 소개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첫 현대미술>전은 학계와 언론의 혹평을 받았다.2) 이들은 왜 여러 가지 제약을 감수하면서 명예를 안겨주지도 않고, 투자의 대상도 아닌 현대 미술에 관심을 쏟았을까.

이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올 수 있다. 이미 남성이 점령한 고미술 후원보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는 변방의 현대 미술이었다. 작품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자금 운용이 자유롭지 않던 상황에서 수집이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세 명의 후원가는 미술에 대한 선진적인 안목이 있었다. 애비 록펠러는 어릴 적부터 예술을 장려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애비의 아버지는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Rhode Island School of Design)를 후원했고, 문화예술 장려 정책인 페인-올드리치 관세법을 입법했다. 애비는 에보트 학교(Miss Aabbott’s School)의 미술사 교육과정을 거쳤고 미술계 인사들과 잦은 교류를 가졌다. 그러므로 애비는 어릴 적부터 미술에 대한 취향을 개발할 수 있었다. 대조적으로 남편인 존 록펠러의 아버지는 미술품 수집은 사치라고 폄하했다. 그래서 존의 수집 활동은 성인이 된 이후 1910년대 미술품 수집 유행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상류층 남성들은 미술품을 자산으로 따져 투자수단으로 취급했다. 존의 컬렉션은 따라서 사치품 위주인 중세의 장식 미술과 공예품, 동양의 도자 등에 한정되었다. 록펠러 부부 사례는 당시 여성 후원자들은 미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에 한정해 활동했고, 남성들은 시대적인 취미활동으로써 미술품 수집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려준다.

릴리 블리스의 가정환경도 미술과 연관이 깊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미술 컬렉터였다. 그는 섬유상이자 내무부장관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했다. 맥킨리 대통령 집권기에 부통령으로 추대된 적이 있을 만큼 정치적 위상이 높았다. 블리스는 어릴 적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와 대외 행사에 자주 참여했다. 그러면서 문화 활동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 많았다. 블리스는 또한 음악에 관심도 깊어 줄리어드 재단 등을 후원하기도 했다. 블리스가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많았던 만큼 그의 취향은 선진적이었다. 블리스는 위에 언급한 <아모리 쇼>를 기획한 인물이기도 하다. 블리스는 해마다 파리를 오가며 미술의 최신 동향을 흡수했고, 이를 미국에 대중화시키는 데 힘썼다. 여전히 보수적인 미국의 미술계에서 피카소와 세잔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블리스가 계속 그들을 지지하며 소개시켰던 것은 파리에서 미리 미술 전체의 동향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리스는 191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살아가며 가정생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수집을 이어 나갔다.

메리 퀸 설리반은 미국의 저명한 미술 대학인 프랫 인스티튜드(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다. 이후 메리는 퀸즈(Queens School)의 미술 교사가 되었는데 미술 교육과정을 견학하기 위해 유럽에 보내졌다. 이때 메리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인상주의 작품들을 접하고, 현대 미술로 이행하는 동향을 파악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메리는 모교인 프랫을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실내디자인 관련 책을 내기도 했다. 설리반은 1917년 고서적과 골동품 수집 취미를 가진 변호사 코넬료 설리반(Cornelius Sullivan)과 결혼했다. 아내의 예술 및 수집 활동을 지지했던 코넬료 덕분에 메리는 결혼 이후에도 여성활동 단체와 미술관 후원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애비와 블리스, 메리의 오랜 미술에 대한 안목과 식견은 이들은 모험적인 컬렉터로 활약하도록 했다. 애비와 블리스는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만나 유럽의 전위 예술을 소개하는 미술관에 대해 구상을 했다. 그리고 미국에 돌아와 이 계획을 유명한 미술 교사였던 설리번과 공유하면서 미술관 설립에 뜻을 모았다. 곧 이들은 맨해튼 서부 53번가에 위치한 록펠러 저택 7층에 지금의 모마를 설립했다. 셋 중 가장 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는 애비였는데 남편이 그의 활동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미술관 운영 기금 규모는 다소 적었다. 적당한 미술관 부지가 없었기 때문에 미술관은 초기 10년간 3번 이사했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모마의 전시는 유명세를 탔다. 여기에는 애비가 직접 고용한 관장 알프레도 바(Alfred Barr)가 기여한 바가 크다. 바는 스물일곱살 하버드대학교 박사학위 과정 중에 애비와의 면접을 통해 관장에 발탁되었다. 모마 개관전에서 바는 고흐(Vincent van Gogh), 고갱(Paul Gauguin), 쇠라(Georges Seurat), 세잔(Paul Cézanne)을 중심으로 <후기인상파>전을 개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공황이라는 침체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5주간 5만여 명의 관람객을 모은 이 전시를 통해 바는 미국 현대 미술 분야의 실력자로 급부상했다.3)


<모마 첫 전시 <후기인상파>. 출처: MOMA>

한편, 블리스는 1931년 사망하고 설리번은 남편 사후 이사진에서 사임하면서 애비만이 남게 되었다. 블리스는 사후 193427점의 세잔 컬렉션과 60만 불을 모마에 기증하여 모마의 영구소장품이 구성되었다. 이때 영구소장품 수집 원칙은 과거 50년 이내 작품만을 소장하는 것이었다. 모마의 설립 취지 핵심 창의성 있는 미술가가 다른 미술관에 주목받지 못할 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규정이었다. (1953년 시간이 흐르며 이 원칙은 깨진다)

1939년이 되면 모마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존 록펠러가 애비의 활동을 돕기 시작하면서 미술관 부지와 거액의 돈을 기부한 것이다. 록펠러 저택을 재건축해 다시 개관한 날 모마에는 6천여 명의 관람객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비대해진 규모와 상반되게 이 무렵 모마의 실험적인 모험은 사실상 끝나갔다. 미술관이 비대해지고 명성을 얻으며 초기 설립 취지를 지키기 어려웠다. 모마는 이름 없는 신인들에겐 범접하기 어려운 성전이 됐다. 이 무렵 애비는 미술관에 소장품과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을 제외하고 운영에서 거의 물러난 상태였다. 1948년 애비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미술관에서는 애비의 공을 기리며 애비 록펠러 판화실애비 록펠러 정원을 조성했다. 애비의 막내아들 데이비드(David Rochefeller)는 그 뒤를 이어 모마에 수백여 점의 미술품을 기증하고,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며 모친의 뒤를 이어 후원 활동을 이어갔다.

오늘날 모마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관이 되었다. 그러나 위상이 커진 나머지, 과거 세 여성이 모마의 설립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은 창의성 있는 예술가에 기회를 주기 위해 미술관을 설립했다. 미술관은 동시에 그들 자신에게 기회가 되었다. 변방의 현대 미술이 미술 중심부로 들어오게 된 것처럼, 이들의 선례는 여성의 미술계 진출에 있어서도 기회를 넓히는 것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웹진 기자단

미술원 미술이론과 서혜원

 

<참고>

이윤영, 20세기 초 미국의 여성 후원자들과 현대미술관의 설립 : 뉴욕현대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5

권이선, 이수형,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 아트북스, 2012.



<주석>

1) 이윤영, 20세기 초 미국의 여성 후원자들과 현대미술관의 설립 : 뉴욕현대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5, pp15-16.

2) 권이선, 이수형,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 아트북스, 2012, 15p

3) 권이선, 이수형, <위의 책>,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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